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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대학원생의_소소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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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변증학- 대학생활 중 가장 유익.

by 샤대학원생 2020.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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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15
(아주 예전글을 네이버 블로그에서 찾았다. 4년전 뒤죽박죽 내 멋대로 쓴 글이다. 역시 글도 주인같이 썼다..)



방학동안 타 대학 학생들과 독서토론 스터디를 했었다. 다양한 책들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모임 이였는데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을 읽다가 ’종교’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다. 신이라는 것은 선의 최고를 뜻하는데 왜 하나님은 모두 천국에 가게 할 수 없으며 영원한 지옥이 왜 필요한가? 에 대한 토론을 가졌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독교 변증학 수업을 무조건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방학 때 답하지 못했던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가장 적합한 수업이라 생각을 했는데 그 답을 정확히 수업에서 듣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사용한 책인 특종,믿음, 사건 6장에서 정확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6장은. 영원한 지옥이 무슨 필요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지옥은 고문실이 아니다. 성경에 따르면 지옥이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하나님으로부터 분리 또는 추방된 것을 의미한다. 모든 중요한 것은, 모든 가치, 하나님뿐 아니라 그분을 알고 사랑하게 된 모든 사람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이다.  지옥은 하나님의 차선책이다. 사람들이 그분께 반항하여 가장 좋은 것, 즉, 본연의 지음 받은 목적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득불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지옥에 보낼 수 있는가 사후세계에서 인간의 성품은 어디까지나 성인의 상황을 나타낸다. 따라서 지옥에는 어린아이들이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사무엘하 12장23절)

왜 모두가 지옥에서 똑 같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지옥의 고립, 분리, 공허에도 각기 정도의 파이가 있다.  하나님의 처벌이 비례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거부한 사람 모두에게 정확히 똑 같은 처벌이 내려지지는 않는다. 

왜 유한한 죄에 무한한 벌을 받아야 하는가? 지옥은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된 데 대한 영원한 의식적 ‘아픔’이다. 처벌의 기준은 죄를 짓는데 소요된 시간이 아니다. 처벌의 정당함은 범죄 행위에 걸린 시간이 아니라 범죄 행위 자체의 심각성에 달려있다. 최악의 일은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우롱하고 그분의 명에를 더럽히고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한 인간이 그분 없는 삶을 택함으로써 평생 그분을 무시하고 끊임없이 그분을 우롱하며 사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이다. 

왜 하나님은 모두 천국에 가게 할 수 없는가?비도덕적인 일이기 때문이다.인간을 도구적 가치, 득 목표의 수간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이며 잘못된 일이다. 사람들에게 본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무시하고 억지로 뭔가를 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일이다. 즉, 본인이 원치 않는 일을 시킴으로써 그들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강제로 천국에 가게 한다면 하나님도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거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신다. 사실 원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천국과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신적 폭력이다. 인간에게 당신을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하나님은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인간을 그냥 없애 버리지 않는가? 지옥이 있는 이유는 인간에게 내재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재적 가치를 중시하는 분이라면 사람을 그냥 두셔야 한다. 그래야 내재적 가치를 존속시키는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을 절대 없애지 않는다. 그러니까 결국 지옥이야말로 도덕적으로 정당한 유일한 대안이다. 

어떻게 지옥과 천국이 공존할 수 있는가?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음 사실을 알게 된다. →지옥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내재적 가치의 존재로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인간의 누릴 수 있는 능력은 나이가 들어 좀 더 성숙한 시각을 얻을 때 가능하다. 

C.S 루이스는 지옥은 천국에 대해 거부권이 없다고 말했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지옥에 대한 의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삶을 즐기는 특권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혼이란 슬픔과 비탄을 느끼면서고 동시에 마음의 동요 없이 기쁨과 평안, 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도 양쪽을 동시에 공유 할 수 있을 때 그만큼 성품이 성숙했다고 할 수 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을 따를 사람만 창조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두신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이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재차 기회를 주지 않는가

성경은 모든 사람이 그분께 돌아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시간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까지 연기하고 있다고 한다. 

질문: 사후에 하나님의 임재나 부재를 느껴 보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동기가 되지 않을까?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는 기간이 길수록 자유 선택을 굿하여 그분을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그것은 죽음 이전의 삶을 전혀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들이 사후에 하나님의 심판석을 본다면 그 불가항력적 위력 앞에 더는 선택의 능력을 잃고 말 것이다. 그때 그들이 내리는 ‘결단’은 어느 것 하나도 진정한 자유의 선택일 수 없다. 완전이 강압된 것이다. 

윤회가 보다 자비롭지 않은가?

 전생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들은 윤회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육체적 연속성 (자기 본질) →윤회는 내가 개나 아메바로 환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윤회는 나의 본질이 결국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신적 기질 패턴의 심리학의 연속성

 나사렛 예수→ 그 분은 죽었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이 문제를 권위적으로 정리한 역사상 유일한 분. 예수는 윤회가 틀렸고, 인간은 한번 죽으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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